고 이익섭 교수는 과연 알았을까요?
황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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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8 10:05
투병생활 속에서도 장애인 인권 위해 몸부림
숙명의 과제 풀기 위해 마지막 힘 발휘한 듯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0-02-05 21:21:47
▲유족들의 그를 따라 걷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수많은 이들이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걸을 것입니다. ⓒ에이블뉴스 |
어쩌면 그는 알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DPI 회장을 맡기 전부터, 국제장애인권리협약 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그의 건강은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그의 활동력은 오히려 왕성해졌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은 과제를 풀기 위해서 마지막 힘을 발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장애인권리협약과 관련한 해외 취재에서 지켜본 그는 회의장에서는 논리적인 웅변가였지만 숙소로 돌아와서는 소진한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서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했습니다. 당시 그의 행동이 이제 와보니 더욱 분명해지는군요.
그는 지위 고하를 떠나서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에 늘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힘든 건강 속에서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특유의 유머감각은 늘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주변 사람을 항상 미소 짓게 만드는 따뜻한 유머였습니다.
그는 강연에서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항상 강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논리와 감성이 적절히 버무려져서 폐부를 파고들었습니다. 장애인당사자주의에 대한 그의 첫 강연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Nothing about us, without us!’(우리 없이는 우리에 대한 것은 없다!) 이 문구를 그만큼 가장 강렬하게 활용하는 사람은 아직 나는 찾지 못했습니다.
시각장애인 안마사 독점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왔을 때, 다급히 걸려온 그의 전화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 것인지 금방 깨닫게 했습니다. 안마사들이 검은 한강물 속으로 뛰어들 때, 이들을 멈추기 위해서 그는 한강을 찾았습니다.
많은 장애인들이 그를 닮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눈은 빛을 볼 수 있는 기능을 잃었지만, 그의 발자취는 후배들에게 큰 빛이 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그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게 되겠죠. 그래서 그의 죽음에 ‘장애인계의 큰 별이 졌다’고 말하나 봅니다.
고 이익섭교수는 10살 때 시각을 잃었지만 공부에 매진해 1979년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사회복지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아 1993년 연세대학교 첫 시각장애인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됐습니다. 이후 2002년 연세대 사회복지연구소장을 2년간 맡았고, 2005년부터는 사회복지대학원장을 맡아왔습니다.
그는 학자로서 수많은 논문과 연구집을 발표하면서 사회복지 및 장애인복지 분야의 후학 양성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늘 실천을 강조하던 그는 연구실에만 머물러있지 않았습니다. 지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DPI회장으로, 2005년부터 2006년까지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상임대표로 장애인운동을 이끈 장애인운동가였습니다.
고인은 국제적인 장애인 리더였습니다. 국제장애인권리협약 초안이 논의되던 지난 2003년부터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이 성안되어 2006년 유엔에서 채택되고 국내에서 비준되는 지난 2008년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하며 국제장애인권리협약 제정을 이끌었습니다. 외국의 장애인 리더 중에 ‘닥터 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번 주 고 이익섭교수의 별세 소식이 많은 이들을 슬퍼했습니다. 그를 비롯한 장애인당사자들의 투신이 많은 것들을 바꾸어냈지만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지 태종대에서 전동휠체어 장애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는 소식은 너무나 후진적인 우리 사회의 단면을 또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연세대 후배이자 제자인 양익준씨는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내주 정식으로 검사 임명장을 받게 됩니다. 휠체어를 타는 첫 검사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시각장애인 최영씨와 함께 또 한 명의 휠체어 장애인이 사법연수원에 입소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사법연수원의 장애인화장실은 여전히 남녀공용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당사자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초청한 캘리포니아 발달장애인계 리더들은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줬습니다. 에이블뉴스와 가진 대담에서 그들은 아주 분명하고도 강한 어조로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대해 ‘예스’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과제를 제시했습니다. 바로 지원체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법률적 근거를 만들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체계를 만드는 과제를 우리가 풀어야하는 것입니다. 미국 리더들의 방한은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해서 인식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풀어야할 숙제가 너무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었습니다.
마지막 소식입니다. 에이블뉴스가 오마이뉴스와 기사제공에 관한 협약을 맺었습니다. 앞으로 오마이뉴스의 장애인 및 복지 관련 기사를 에이블뉴스에서 볼 수 있게 되고, 마찬가지로 오마이뉴스에서도 에이블뉴스 기사를 볼 수 있게 됩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이만 물러갑니다.